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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스스로의 높은 기준치, 욕심에 대한 회고

최근에 벌인 일
블로그 글이랍시고 원래 세 편 정도 작성해둔 글이 있었는데, 모두 지웠다. 사실 지우지 않는 방향도 고려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내가 블로그에 뭘 남겨야 할지 정립한 상황에서 앞으로 내가 만족하며 작성할 글들과 과거의 잔재가 같이 남아있는게 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내가 이런 행동을 꽤나 반복했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작성하는게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인지, 그 고민의 결과에 대해 다루기 전에 내가 생각한 나는 블로그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끄적여보려고 한다.
템플릿 서퍼(Surfer)
내가 이 블로그를 배포하고 있는 수단은 GitHub에서 제공하는 무료 정적 웹사이트 호스팅 기능인 GitHub Pages이다. 처음 GitHub Pages를 활용해서 블로그를 배포해봤던 시기는 2021년으로 기억한다. HTML CSS 코드를 뜨문뜨문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블로그를 ‘만들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당시 인기 있던 템플릿 중 하나를 택해서 배포해봤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사용했던 테마 hydejack)
템플릿을 통해 블로그를 잘 만들었으면 글을 잘 썼으면 되는건데 이상하게 하나씩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겨났다. 다크모드 기능이 없거나, 검색 기능이 없거나, 그냥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거나 등등 템플릿에 만족하지 못하면 글을 작성할 수가 없었고, 나는 또 다른 마음에 드는 템플릿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이 때 더 답답함을 느껴서 차라리 ‘아 답답해! 그냥 내가 만들어버리겠어!’라는 마음을 먹었으면 아주 좋은 배움의 계기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참… 아직도 반성하는 부분이다.
욕심많은 나의 글쓰기는 문제가 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배우고 싶은 기술도 많고, 만들어내고 싶은 것도 많고, 이것 저것 시도해보고 인정도 받고 싶은 사람이다. 글쓰기도 나에게 그런 영역이었다. 그냥 막 아무도 볼 수 없는 나만의 다이어리에 쓸 법한 글을 쓰고 싶진 않았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고 작가들을 동경해와서 그런건지, 초등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서, 대학생 때 논문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아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스스로의 글에 대한 잣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나는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게 쉬운 사람이라, 만약 그랬다면 내가 글쓰기를 지금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글을 잘 못 쓴다고 앞으로 멀리할 것이냐? 그건 아니고 안될 말이다. 앞으로 공부하고 개발하며 많은 글을 읽게 될 것인데 공부 기록이 되었든, 트러블 슈팅 문서가 되었든, 개발 결과물에 대한 리드미, 보고서 등 내가 작성할 글이 매우 많고, 공부 기록이나 회고를 제외한 글들은 대개 협업 과정에서 누군가가 읽게 되는 글이기 때문에 글의 질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문제가 뭘까? 나는 왜 글을 못 쓸까? 왜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은 나중에 보면 이불킥을 유발하고 하찮게 느껴졌던 걸까? 너무 궁금해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느꼈던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 지극히 평범한,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는 1차원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글
- 무언가에 잔뜩 취해서 휘갈긴 글
첫 번째 유형의 글들은 어떤 블로그 글을 작성해야할지 아직 고민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했던거라 지금도 글의 작성 의도를 알겠지만, 두 번째 유형의 글들은 음… 다시는 이런 글을 작성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글은 겸손하거나, 감정이 없어야한다.
지적 허영(虛榮)을 경계해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특정 이론이나 기술을 공부할 때, 그것에 심취(心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결과가 어쨌든 그 기술이나 이론에 대한 깊은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것의 깊은 원리까지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걸 알고 있는 스스로가 대단해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과시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칙이 아닌 ‘이론’이지만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 4단계에 해당하는 것이 존중(Esteem)에 대한 욕구이고, 이는 타인에 의한 인정 욕구를 포함하며 이것이 결핍되었을 때 충족하기 위한 과시욕이 유발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술의 전문가이자 구루(Guru)를 지향하는 나는, 혹은 나와 비슷한 결을 선택한 상황에서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독자분들은 더더욱 인정받기 위한 허영이 묻어나는 글을 작성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에 주목하며 꾸준히 성장하면 타인에 의한 인정은 따라온다.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인 거 그 사람들도 알기 때문이다. 열심히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공부하다보면 저 바깥 세계엔 이미 웅크린 거인들이 산처럼 즐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항상 겸손하자. 그리고 내 글도 더불어 겸손해야한다. 글을 통해 사람을 통찰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내 글이 오만방자하다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항상 겸손한 글만 쓴다면 나는 그냥 예의 바른 사람이 될 뿐이고, 엔지니어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글들은 어느 정도 겸손함을 배제한 채, 사실에 입각한 채로 무감정한 기록 그 자체로 작성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문서, 이력서
최근에 데브코스라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졸업까진 한 학기가 남았지만 미리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등을 작성하고 여러 회사에 지원해보고 있다. 나는 이력서 작성에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만 작성해야하고, 이력 그 자체로 독자를 매료시켜야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 이걸 모른 채로 이력서를 작성했을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기 위해 나를 포장한 문장들을 포함해서 작성했었는데, 그 이력서를 보여드렸던 분들 중에 이런 피드백을 주신 분이 계셨다.
저는 이력서에 ‘형용사’가 들어간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말을 듣고 이력서의 핵심을 어렴풋이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이력서는 감정이 배제된 문서여야한다. 나의 경우도 그렇지만 신입 이력서에 간단한 자기소개가 한 줄 ~ 한 문단 정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어느 정도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 기본은 감정이 배제돼야한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문장을 읽는 모든 사람이 같은 결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력을 작성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저는 아주 잘생겼습니다!”에 대한 독자의 예상 반응
- “오 자신감 뭐야”, “진짜 잘생겼나?”, “허세 엄청 많은 사람이네…”
- “제 나이는 22살입니다.”에 대한 독자의 예상 반응
- “젊다”, “대학생인가?”, “좋을 때다~”, “22살이면 03년생인가?”, “오 22살이구나”
전자의 경우 누군가는 자신감에, 누군가는 말의 진위성에, 다른 누군가는 선입견에 대한 반응을 떠올리고, 후자의 경우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22살의 나이’라는 정보에 주목하는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갑자기 이력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기술 블로그에서 내가 앞으로 작성할 글의 방향이 이 이력서의 성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적을 것인가
최근에 제목에 이끌려 읽게된 책이 하나 있다. 아직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UI에 포함되는 ‘글’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했다.
내가 경험했던 소규모 프로젝트에서는 UX 라이팅이 나를 비롯한 FE 개발자의 일이었지만, LINE 처럼 큰 규모의 글로벌 서비스 회사의 경우 서비스를 구성하는 UI 텍스트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기 때문에 UI 텍스트 작성을 주 업무로 처리하는 ‘UX 라이터’라는 포지션이 따로 있다고 한다. UI에서 텍스트가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꽤 크고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용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정확하고, 간결하고, 일관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잘 녹아있다.
내 기술 블로그의 글도 이런 방향을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 정확하게 적자: 기술과 이론은 정확하게 알고 사용해야한다. 출처를 찾는 습관을 들이고, 절대 추측하지 말자.
- 간결하게 적자: 쓸데없이 장황할 필요 없다. 핵심을 잘 전달하는 데 주력하자.
- 일관되게 적자: 차갑게, 정확하게, 간결하게 적자. 그리고 이것을 잘 유지하자.
물론 이 글이나 앞으로 작성할 개인적인 고민에 관한 글, 회고 등은 이런 방향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솔하고 겸손한 느낌의 글일 것이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꾸준하게 글을 작성해보자. 파이팅.